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리치 블랙모어 (문단 편집) == 가족 관계 == * 부모님 아버지는 루이스 J. 블랙모어, 어머니는 바이올렛 블랙모어이다. 11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는 그에게 클래식 기타를 사주었고, 그 유명한 "열심히 연습 안 하면 기타로 머리를 후려치겠다"라고 말한다.[* 이 일화가 훗날 자기가 그레이엄 보넷을 기타로 후려쳤다고 와전됨] 그 후 그는 일주일에 2-3번정도 기타 강습을 받으러 자전거를 타고 4마일 밖에 있는 곳에 왕복을 하곤 했다. 그가 음악적인 활동을하는데 부모님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부모님은 그가 기타로 돈벌고 산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음악을 하는지는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부모님을 공연에 처음 모셔왔을 때는 딥 퍼플과 오케스트라의 합동 공연이었다고 한다. 그 때 아버지는 아들이 거대한 오케스트라 사이에서 기타를 연주하면서 주목을 받고있고, 관객들은 5천명 넘게 온것을 보고 "아들놈이 확실히 뭔가 대단한 것을 하고있구나~"라고 실감을 했다고 한다. 어머니와는 매우 가까운 관계였는데 아버지와는 안 좋은 관계까지는 아니었지만 부자지간의 정까지만 있는 정도였다고 한다. 당시 시대가 시대였던지라 부모들이 아이에게 대놓고 '사랑한다'라는 등 애정표현을 하던 시대가 아니었다고 한다. 그에 반해 어머니는 아들에게 애정표현을 스스럼없이 하였지만, 아버지는 좀 반대였다고 한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리치를 엄격하게 대한것도 아니었다. 뭐라 혼내려고 하면 큰 잘못이 아닌 이상은 어머니가 '아이한테 그러는거 아니다'라고 쉴드를 쳐주었다고 한다. * 전 부인들 리치는 캔디스 나이트를 만나기 전까지 총 2번 결혼하고 2번 이혼 하였다. 19살때 결혼한 동갑내기 아내였던 독일인 Margrit Volkmar가 있었고 그녀 사이에서 장남인 위르겐 블랙모어를 낳았다. 결혼기간은 1964-69년도까지 짧은 기간이었다. 1974년 부터 1975년 까지 1년간, 쇼산나 페인스타인 이라는 소프라노와 동거하기도 했었다. 그녀는 레인보우의 첫 스튜디오 앨범 'Ritchie Blackmore's Rainbow'에 백킹 보컬로 참여했고, 'Catch The Rainbow' 와 'Still I'm Sad' 에서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2017년 6월 한 웹진에서 그녀를 찾아내어 [[http://hardrockhaven.net/online/2017/06/exclusive-interview-with-shoshana-feinstein-former-backing-vocalist-for-ritchie-blackmores-rainbow/|인터뷰]]를 하였고, 그녀는 리치에 대해 여러 썰들을 풀었다. 그 다음 에이미 로스맨이란 여성과 1981년도에 결혼했었지만 83년도에 2년만에 이혼을 하게된다. * 위르겐 블랙모어 (아들) [[파일:external/jrblackmore.com/2011-11-14-13.56.19.jpg|width=30%&align=center]] 리치 블랙모어는 여러 차례 결혼을 했었는데, 그 중 첫 부인인 독일인 여성 마르기트 폴크마와의 사이에서 19세 라는 이른 나이에 위르겐 블랙모어 라는 아들을 낳았고, 위르겐은 아버지의 대를 이어 기타리스트로 활동 중이다. 레인보우의 보컬 이었던 조 린 터너가 결성하였던 레인보우의 트리뷰트 밴드 오버 더 레인보우[* 레인보우의 멤버 였던 사람들로 이뤄졌는데, 이들이 레인보우에 있었던 시기는 각각 달랐고, 유럽에서 투어를 몇 번 돌다 해체되었다. 이후 조 린 터너의 인터뷰에 의하면 멤버들의 갈등으로 엄청 싸워서 본인은 탈퇴를 했고, 남은 멤버들은 조 린 터너를 대신할 보컬로 두기 화이트와 그레험 보넷에게 러브콜을 보냈지만, 아무도 응하지 않아 결국 밴드가 해체되고 말았다고 한다. 이렇게 개성과 성격이 엄청 쎈 멤버들을 다뤘던 리치의 카리스마를 알 수 있는 부분.]에 기타리스트로 참여하기도 하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UaNUa6jYYuk|위르겐이 어쿠스틱으로 연주한 Smoke On The Water]] [[https://www.youtube.com/watch?v=l3nLi1lMBGg|딥 퍼플의 공연에 게스트로 참여하여 딥 퍼플의 멤버들과 Smoke On The Water을 합주하는 위르겐]] [[https://www.youtube.com/watch?v=0tv5JM4K8YA|오버 더 레인보우 공연에서의 위르겐]], 연주하는 곡은 조 린 터너 시기의 레인보우의 대표곡인 Street Of Dreams 이다. 이렇게 행적만 보면 위르겐은 원래 아버지가 있어야할 자리에 아버지가 [[레인보우(영국 밴드)|참여를 안하거나]] [[딥 퍼플|못한 자리에]] 대신 한 것으로 보인다. 아무래도 아버지의 후광을 넘지 못하는 듯. * 캔디스 나이트 (아내) 리치 블랙모어의 현 아내이자 리치와 같이 블랙모어스 나이트의 보컬로 활동 중이다. 1971생으로 리치와는 나이가 26살이나 나고, 리치의 장남인 위르겐보다 7살 연하다(...). 남편과의 슬하에 로리 다타냔 블랙모어, 어텀 에스미얼다 블랙모어을 두고 있다. 리치와 캔디스가 처음 만난건 1989년의 한 축구 경기에서 처음 만났는데, 리치는 축구를 하고 있었고, 캔디스는 그 시합을 보러 왔었다고 한다. 당시 캔디스는 뉴욕의 한 라디오 방송국에서 진행자로 일하고 있었는데, 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음악, 여행, 역사, 유령(...)[* 참고로 리치 블랙모어는 보기보다 미신같은걸 꽤 잘 믿는 사람이다. 밑에서도 서술되지만, 딥 퍼플 시절에는 이러한 성향 때문에 베이시스트 로저 글로버와 싸우는 일도 있었다.] 등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금새 친해졌고, 급기야 1991년 부터 동거하다가 결혼까지 한다. 이후로는 성질이 좀 죽은듯한 모습도 보인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바로크 음악과 포크 음악이 원류인듯 하다. 실제로 70년대 부터 이들 음악에 관심이 많아서 오히려 락보다 더 많이 듣고 연주했다고 한다. Under A Violet Moon 뒤로 조금씩 성격이 유해졌고. 자녀를 가진 후부터는 정상인이 된 듯하다.[* 이 부분은 후배인 잉베이 말름스틴에게도 계승 중이다. 잉베이도 오랫동안 메탈만 연주하다가 시골 같은데서 포크송을 연주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험버커 달린 슈퍼스트렛으로 본인 곡도 커버한다--.] 여담이지만 블랙모어스 나이트 결성 당시 국내의 한 음악 잡지에서 리치 블랙모어에게 전화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리치 측에서 내건 조건이 '캔디스 나이트도 함께 인터뷰 할 것'이었다고 한다. 캔디스 나이트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던 기자들은 유일한 자료인 그녀의 사진들을 보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인터뷰 시간까지 대기하였는데, 인터뷰가 시작되자 "내가 어렸을때 노래하면 새들이 몰려 들어와 듣곤 했다.", "내 목소리는 하늘이 내려준 천사의 목소리라고 생각한다." 등 주옥 같은 [[공주병]] 어록을 쏟아내어 기자를 괴롭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인고의 시간을 견뎌내준 기자 덕분에 두 사람의 인터뷰 기사 자체는 질적 양적 측면 모두 굉장히 훌륭하게 뽑혀져 나왔다) 기행을 좀 보여주지만 실력있는 보컬리스트라서 그런지 인재를 보는 눈이 있는데, 캔디스에 의해 발굴된 인재가 구 레인보우 마지막 기수의 보컬인 두기 화이트고 그 다음이 신 레인보우의 보컬 로니 로메로다. 두기 화이트는 자잘한 부업으로 생계를 유지를 하다가 뿌려뒀던 데모 테이프가 캔디스의 손에 들어가 레인보우에 발탁이 되었고, 로니 로메로는 본인이 올려둔 유튜브 영상을 본 캔디스가 리치 블랙모어에게 들려주면서 무명이었던 로메로를 메이져로 끌어올렸고 리치로 하여금 다시 레인보우를 하게 만들었다. 결혼식 때 리치가 턱시도 대신 전통 중세시대 옷을 입고 온 것으로 유명한데, 이언 길런 역시 결혼식 때 전통 조지아 복장을 입고 결혼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